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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워치는 기록을 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AI가 ‘다음 경기의 컨디션’을 읽기 시작했다

sky · 2026.09.10 16:26

심박·수면·훈련량에 심리상태까지 결합…육상선수 132명 14주 추적

AI 모델로 다음 주 경기력 변화 예측…‘몸 상태’만큼 ‘자신감’도 중요

러닝과 스포츠 웨어러블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 러닝워치가 주로 심박수와 거리, 페이스, 수면시간 등을 측정해 운동 기록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음 경기에서 몸이 얼마나 준비돼 있는가”를 판단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국제 학술지 Frontiers in Physiology에 발표된 연구가 이런 변화를 보여준다. 연구진은 육상선수 132명을 대상으로 14주 동안 생리학적 지표와 훈련량, 수면, 심리적 준비 상태를 추적하고 머신러닝을 이용해 다음 주 경기력 변화를 예측했다.

연구에는 단순히 운동량만 들어간 것이 아니다. 선수들의 아침 심박변이도(HRV), 안정시 심박수, 수면시간과 수면의 질, 세션별 운동자각도(RPE)를 이용한 훈련부하와 함께 인지적 불안과 자기효능감(self-efficacy)​까지 분석 변수로 포함했다.

연구진이 사용한 핵심 질문은 간단하다.

“지난 일주일 동안 선수의 몸과 마음에서 나타난 신호를 보면, 다음 주 경기력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는가?”

132명 선수의 14주 데이터를 AI로 분석

연구진은 경쟁 수준이 서로 다른 육상선수 132명을 14주간 추적했다. 최종 분석에는 선수-주(athlete-week) 단위의 1,422개 관측치가 활용됐다.

분석에는 ‘XGBoost’라는 머신러닝 기법이 사용됐다. 이 방법은 여러 변수 사이의 비선형적인 관계와 상호작용을 포착하는 데 강점이 있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는 같은 선수의 데이터가 학습용과 검증용에 동시에 섞이지 않도록 선수 단위 그룹 교차검증을 적용했다. 반복 측정 자료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데이터 누수를 줄이기 위한 방식이다.

그 결과 생리적 지표와 훈련량, 수면·회복, 심리적 준비 상태를 모두 결합한 모델의 평균 외부검증 R²는 0.510으로 나타났다.

숫자만 보면 상당히 높은 수준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결과를 ‘AI가 선수 경기력의 51%를 맞혔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연구진의 추가 분석에서 중요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경쟁 수준을 제외하자 모델의 R²는 0.366으로 떨어졌다. 또 선수 개인의 고유한 수준을 제거하고 같은 선수 안에서 주별 변화만을 놓고 분석했을 때 R²는 0.177~0.306 수준으로 낮아졌다. 즉 전체 예측력에는 ‘원래 어느 정도 수준의 선수인가’라는 선수 간 차이가 상당 부분 포함돼 있었다.

몸만 보던 시대에서 ‘마음까지 읽는’ 데이터로

이번 연구에서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심리적 지표다.

생리·훈련·수면 관련 데이터만 사용하는 모델에 인지적 불안과 자기효능감을 추가하자 예측력이 평균적으로 R² 0.088만큼 추가 개선됐다.

특히 육상 종목 가운데 기술적 요소가 큰 종목에서는 심리적 준비 상태의 영향이 보다 뚜렷하게 나타났다. 자기효능감과 기술 종목 여부의 상호작용은 통계적으로 유의했고, 인지적 불안 역시 기술 종목에서 경기력 변화와 관련된 신호를 보였다.

이는 운동선수의 ‘컨디션’을 단순히 심박수나 수면시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잠을 충분히 잤고 심박변이도도 괜찮더라도, 선수가 스스로 자신의 경기력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실제 경기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나는 지금 잘 준비돼 있다”는 선수의 주관적 판단 자체가 데이터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러닝워치가 묻는 질문이 달라진다

이 연구가 러닝과 웨어러블 산업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금까지 러닝워치가 주로 답했던 질문은 “얼마나 뛰었나”​였다.

거리, 페이스, 심박수, 칼로리, 수면시간 등을 측정해 사용자의 운동을 숫자로 기록했다.

하지만 웨어러블 데이터가 장기간 축적되고 AI가 이를 통합하면 질문이 달라진다.

“오늘 얼마나 뛰었나”에서 “지금 어떤 상태이며, 다음 훈련이나 경기를 얼마나 잘 소화할 수 있는가”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바로 그 가능성을 시험했다.

HRV와 안정시 심박수는 자율신경계와 회복 상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수면은 회복과 관련된 장기적인 상태를 보여준다. 훈련부하는 최근 몸에 가해진 자극의 크기를 나타낸다. 여기에 불안과 자기효능감 같은 심리적 변수를 결합하면 하나의 지표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선수의 상태를 보다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연구진 역시 이번 결과를 특정 지표 하나가 경기력을 결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여러 종류의 데이터를 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과로 해석했다.

다만 ‘AI가 경기 결과를 맞힌다’는 이야기는 아직 이르다

이번 연구를 현장에 적용할 때는 신중함도 필요하다.

연구 대상은 132명의 육상선수였고, 분석 기간 역시 14주였다. 무엇보다 전체 모델의 높은 예측력에는 선수들의 경쟁 수준처럼 비교적 안정적인 개인차가 상당 부분 포함돼 있었다.

선수 개인의 주별 변화만 놓고 보면 예측력은 상당히 낮아졌다. 연구진도 이 점을 명확히 지적하며, 이번 연구 결과를 인과관계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 AI가 “다음 경기에서 몇 초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언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오히려 현실적인 활용 가능성은 선수의 평소 패턴에서 벗어난 변화를 조기에 발견하는 것에 있다.

평소보다 HRV가 낮고 수면이 나빠졌으며 훈련부하는 높아진 데다 선수 스스로 자신감까지 떨어져 있다면, 코치가 다음 훈련의 강도나 회복 계획을 다시 검토할 수 있다.

러닝의 미래는 ‘더 많은 데이터’가 아니라 ‘데이터의 해석’에 있다

이번 연구가 보여주는 변화는 웨어러블 시장의 다음 경쟁이 단순히 센서의 정확도나 측정 항목의 개수에만 있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러너들은 심박수와 수면, HRV, 훈련부하 등 수많은 숫자를 갖고 있다.

문제는 그 숫자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다.

앞으로의 러닝 플랫폼은 단순히 “어제 10㎞를 뛰었다”고 알려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여러 데이터를 종합해 “현재 훈련을 계속해도 되는 상태인지, 회복이 필요한지, 다음 경기에서 평소보다 좋은 퍼포먼스를 기대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러닝 데이터의 가치는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선수의 몸과 마음에서 나타나는 여러 신호를 하나의 맥락으로 읽어내는 능력에서 결정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그 변화의 초기 단계를 보여준다.

러닝워치는 이제 기록을 저장하는 시계를 넘어, 러너의 ‘다음 상태’를 해석하는 도구​로 진화하기 시작했다.